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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7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지식이란 무엇인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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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0-01-24 12:53:03 / READ : 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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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의 한계? 일관된 진술이라는 개념이 성립가능한가?  따라서 성관련 피해자의 진술이 타당한가?

 

사람은 어떤 위치에 있건, 항상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꿈을 꾸는 이유도 보는 것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인 것 같다. 굳지 꿈이라 한 건 우리의 생각도 꿈처럼 잊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생한 지금은 과거 속으로 음영 지워진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의식은 그루터기 위로 바람이 흔들어 놓을 만한 것들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듯 해는 서서히 저물어 가는 것만 같다. 그저 호리호리한 나무들에 달려있는 붉은 열매들만이 어두워진 의식에 뭔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 같다.

잊혀 가는 기억이란 우리 삶의 필연적 요소라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종종 기억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에서 증언이란 증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된다. 증인은 증언에 앞서 사실만을 말하겠다는 선서(형소법 1572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할 것임을 선서한다.)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시간에 파묻힌 음영 지워진 사실이다. 따라서 그때 사실이란 객관적 사실이 아닌, 증언자 주관에 의해 승인된 주관적 사실이란 점이다. 증언이 주관적 사실이란 입장을 채택할 경우 법정은 아포리아에 빠질 수밖에 없다.

증언이 주관적 차원의 사실 즉 doxa(의견)(소신, 판단, 의견 등을 의미하나, 그것은 그 논거(logos), 즉 그 이론적 근거에 아직 이르지 못한 단계의 것이다. 이에 이른 것은 인식, 즉 지식이다. ‘doxa'는 비록 그것이 바른 의견(판단)이나 진실 된 의견이라 할지라도 ‘doxa' 에 지나지 않지 인식이나 지식이 못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가 될 경우 판결에 있어 증언의 정당성은 문제시 된다. 왜냐하면, 의견은 곧 실재적 사실이 아니며, 의견을 토대로 판결을 내리는 건 토대가 불확실한 오류의 지반 위에서 재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언은 증명력을 지니지 못한다. 나아가 그 증언이 증거물 정황과의 관계하에서 정합적이라도 증언은 하나의 해석일 뿐이지 사실의 지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정에서 증언이 사용되려면 증언이 정당화되기 위한 조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나아가 증언이 증명력을 소유하는 방법 또한 설명되어야만 한다.

이 글의 전체적인 그림은 () 증인의 말이 주관적 차원의 의견을 넘어 사실의 지위를 인정받는 증언이 되기 위한 정당화 조건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그리고 () 정당화된 증언이 지니는 증명력은 어떤 점에서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그 한계를 그으려 한다.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양쪽 측면을 살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모르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예비적 고찰

본 글의 주제의 출발점인 형사소송법 157조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조문에 나타나듯 증언의 성립은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할 때 성립된다. 따라서 조문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선 사실의 의미를 이해해야만 한다. 나는 앞서 밝혔듯 우리 인식의 차원에서 사실의 문제는 독특한 지위를 지닌다고 했다. 그러므로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조문에서 말하는 사실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사실이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개념이기에 친숙한 개념이다. 그러나 동시에 혼란스러운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유는 사실이란 개념의 의미는 그 자체로 완전하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요소를 통할 때 비로소 규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완적인 요소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사실 개념이 가능하다. 사실 개념에 부가될 수 있는 보완적 요소는 크게 두 가지 범주에서 나뉠 수 있다. 그것은 진리지식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의 사실이다.

그러나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언어는 객관적인 명제에 부여되는 말인 진리와 개인의 심리상태에 근거하는 말인 지식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는 수가 있다. 따라서 과학적 지식과학적 진리는 동의어로 생각되지만, 이러한 언어 사용은 엄밀히 말하면 혼동이다. 이 구분은 동사 차원에서 쉽게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태양이 지구보다 크다전제할 때 태양이 지구보다 크다는 것은 옳다.’ 태양이 지구보다 크다는 것을 안다.’ 는 전혀 다른 말이다. 동사인 옳다를 규정하는 주체는 사람이 아닌 명제이다. 반면 예시에서 동사 안다의 주체는 사람이다. 양자 모두 어떤 명제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선 공통적이나 동사인 옳다는 객관적 차원에서의 타당성을, “안다는 심리적 차원에서의 규정이라는 점에서 진리와 지식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 밝혀진다.

앞서 두 가지의 사실 개념을 정립하였다. 내가 취하고자 하는 사실의 개념은 심리학적 차원의 지식개념이다. 그 이유는 조문에서 사실을 말하기 위해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 없이라는 조건언을 제시한다. 이때 양심과 숨김과 보탬 없이는 어떤 한 사람의 심리차원의 진술영역이므로 형법 157조가 대상으로 하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타당한 진리 개념에 정초시키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렇다면 증언을 구성하는 사실은 개인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안다.” 즉 지식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한다.

형소법 157조에서 사실을 진리안다개념 중 안다라는 것 위에 성립시켰다. 하지만 안다는 개념 또한 그 자체로 자기 완결적인 개념이 아니라 보완적 요소에 의해 의미가 규정된다는 점에서 안다라는 말의 의미가 분석되어야 한다. 탐구의 대상은 어떤 사람이 그 사실을 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정당한 지식을 갖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사람이 P를 알기 위한 필요충분조건(AB가 성립하기 위한 필요조건 이라는 말은 A가 없는 경우 결코 B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사실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AB 사이에 논리적으로 어떤 필연적 관계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예컨대 입이 없다면 먹을 수 없다. 이것만 본다면 입과 먹다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필연성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험적으로 A가 나타난다면 변함없이 B가 나타난다면 AB가 성립하기 위한 충분조건이라 말할 수 있다. 해가 뜨면 밝아진다. 여기서 해가 뜬다라는 조건은 밝아지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충분조건 경우 역시 AB 사이의 필연성이 성립하지 않는다.)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증인이 법정에서 말하는 사실, 즉 지식-주장들이 어떻게 정당화되는가를 해명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지식에 대한 전통적 표준 분석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전통적 표준분석

 

이른바 앎의 기준을 제시해주는 전통적 표준분석이라 불리는 분석은 플라톤이 정식화 한 뒤로 금세기 중반까지 가장 확실하면서 완벽한 분석으로 받아들여 졌다.(한상기) 지식의 본성은 무엇인가?”를 묻는 플라톤의 대화편 <테아에테투스>의 주인공 테아에테투스는 지식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하여 소크라테스에게 묻고 있다.

 

그렇다면 선생님, 기하학자의 지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두 수선공의 지식, 목공의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말을 중단시킨다. 그가 알고 싶던 것은 일반적 의미의 지식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지 단순 열거된 특수한 형태의 지식의 예는 필요가 없었다. 소크라테스의 대답에 대해 테아에테투스는 이렇게 말한다.

 

테아에테투스 : 뭔가 아는 자는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을 지각하는 것으로 제겐 생각됩니다. 그리고 지금 떠오르는 대로 하자면, 앎은 다름 아니라 지각입니다..”(Platon Theaitetos, 151e 정암학당 - 정준영 옮김)

 

테아에테투스의 첫 번째 대답은 지식은 지각이다. 라는 정의를 내세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반론에 따르면, 지식과 지각이 같은 경우 보는 일과 아는 일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따라서 과거에 어떤 것에 대해 알고, 기억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그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지식과 지각이 같은 것일 수 없음을 밝힌다. 나아가 생각하는 한에서 지식은 지각이라 한다. 이때 전제되는 말은 지각한 것은 생각되어질 수 있다는 것인데 시간선상에서 지각은 지금시점에서 뒤로 밀려 나가는 과정에서 변양의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지각된 시간객체를 생각하는 것은 시간적 변양을 겪게 되므로 시간객체의 원본을 재구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증인은 증언에 있어 경험한 것 즉 지각 자체로 증언의 타당성을 성립하지 못한다.

테아에테투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지각에 근거한 지식은 부적절함을 깨닫고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테아에테투스 : 선생님 모든 판단을 앎이라고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거짓된 판단도 있으니까요. 참된 판단이 앎일 수 있을 겁니다. ... 그래서 저는 일단 지식이란 옳은 신념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Platon Theaitetos, 187b~c)”

 

테아에테투스는 지식이 지각이 아니며 지식은 우리 정신 활동인 판단으로 얻어진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지식은 옳은 신념(견해)이라는 두 번째 대답을 제시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어떤 신념을 가진 사람이 전혀 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그 신념이 옳을 수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대답의 부적절함을 지적한다. 어떤 사람이 우연히 옳은 신념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 신념에 도달하는 추론이 올바르지 못할 수 있다. 예컨대 증언에서 증인은 A라는 상황에 비추어보아 피고가 S라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확신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리고 피고는 실제로 S라는 행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사실은 B라는 상황과 맞물려 죄를 저지른 것이다. 따라서 증인은 부당한 논증에 의해 유죄임을 확실할 수 있던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추론에 근거해서 그 결론에 도달했다면, 그는 피고가 유죄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테아에테투스가의 세 번째 대답은 다음과 같다.

 

테아에테투스: 그래요, 소크라테스 선생님, 어떤 사람이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제 생각이 나네요. 그는 설명을 동반한 참된 판단이 앎이며, 설명이 없는 것은 앎에서 배제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설명이 없는 것들은, 알려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고, 설명을 지니고 있는 것들은 알려질 수 있는 것들이라고 했습니다.”(Platon Theaitetos, 201c~d)

 

테아에테투스는 누군가의 말을 회상하며 알수있음알수없음의 기준을 옳은 신념에 추가하여 설명의 유무로 제시한다. 이때 설명이란 합리적인설명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인다. 소크라테스는 테아에테투스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안다의 조건을 옳은 신념을 지니는 일에 합리적인 설명이 보태어지면 지식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플라톤은 지식은 옳음과 믿음 그리고 설명으로 분석되어 질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이처럼 지식의 가능 조건을 세 가지 요소로 본 생각은 칸트 순수이성비판에도 나타난다.

 

순수이성의 규준 3, 의견, (지식)그리고 믿음(신앙,신념)에 대하여-

견해, 또는 판단의 주관적 타당성은 확신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세 단계, 곧 의견, 믿음[신앙,신념], [지식]을 갖는다. 의견이란 객관적으로뿐만 아니라 주관적으로도 불충분함을 의식하는 견해다. 견해가 단지 주관적으로 충분하되, 동시에 객과적으로는 불충분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믿음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주관적으로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충분한 견해는 앎이라고 일컫는다. 주관적으로 충분함을 일컬어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라 하고, 객관적으로 충분함을 (모든 사람에 대한)확실성이라 한다. -A822

칸트는 인용문에서 인식을 세 단계로 구분하는 것이 보인다. 첫째는 주장함에 있어 그 주장을 스스로도 완벽히 믿지 않고(주관적 충분함의 결여) 객관적으로도 불충분하면 그것은 그렇지 않을까 라는 단순한 의견이다. 따라서 이 단계는 플라톤이 말한 신념과 옳음이 결여되어 있는 단계이다. 둘째는 주관적 충분성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객관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면 단순한 믿음이다. 이는 객관적 타당성의 부재로 지식이 되지 못하는 것이므로 플라톤의 분류에 따르면 옳음이 부재한 상태이다. 세 번째에 이르러 비로소 안다가 가능하다. 그러나 한 객관적 충분성이 확보되기 위해선 상이한 주관의 견해를 묶어주는 근거가 필요하다. 즉 주관에 의한 주장이 어떻게 객관적 충분성의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견해가 모든 사람에게 타당하면, 모든 사람이 오로지 이성을 가진 한, 그것의 근거는 객관적으로 충분하다.A820" 그리고 타당성은 그 판단이 다른 사람들의 이성에 대해서도 똑같은 결과를갖는지 아닌지에 달려있다.A821"(한상기)

칸트와 플라톤은 지식을 옳음(객관적타당성) 믿음(주관적 충분성) 합리적인 설명(객관적 충분성)으로 분석하였으며, 지식의 가능조건을 세 가지로 분석한 것을 전통적 분석이라 불리며, 이는 다음과 같이 표기 된다.

 

SP를 안다 iff (=if and only if)

1) P가 옳다. (진리조건)

2) SP를 믿는다. (신념조건)

3) SP를 믿는 것은 정당화된다. (정당화조건)

 

첫 번째 조건인 진리조건은 어떤 사람이 안다고 주장할 수 있으려면 그 주장이 옳아야 함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그 주장이 그르다는 것을 알고 있고, 증명할 수 있다면 그 주장은 부정된다. 예컨대 법정에서 증언자가 사람 A가 장소 S에서 행동 T를 하였다고 주장한다 하자 그러나 사실은 사람 B가 장소 S에서 행동 T를 하였다고 할 때 증언자는 자신이 목격했음에도 그것을 안다할 수 없으므로 증언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그 주장은 채택될 수 없다. 나아가 안다라는 말은 ‘~생각한다.’ ‘~믿는다.’라는 말과 구분되어야 한다. 이유는 후자는 옳음을 요구하는 진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언자가 SP라고 생각한다와 믿는다.”로 끝나는 진술형태를 취하면서 P가 그것이 옳다. 주장한다 해도 P는 그를 수 있다. 하지만 안다의 경우는 P는 그를 수 없다. 따라서 만일 SP를 안다면 P는 옳다.

안다의 두 번째 조건인 신념조건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그것은 안다고 주장하기 위해선 자신의 주장이 옳아야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함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증언의 정당성이 확보되기 위해선 증언자가 스스로 자신의 주장이 옳고, 올바르다고 믿어야만 한다. 만약 증언자 자신은 P를 알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다 한다면 이는 부당한 주장이 된다. 이유는 믿음은 안다고 말하는 것의 가능조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사적 표현을 제외하고(ex:내 친구가 B를 죽였지만 나는 그것을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 과거에 환각, 정신착란, 만취 상태에서 보았거나 정신이 명료한 상태에서 보았으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현재 믿지 못한다면 그의 정언은 정당성을 상실한다. P를 안다면 그는 P를 믿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SP를 안다면 SP를 믿는다.

앎의 마지막 조건은 정당화 조건이다. 앞서 살핀 것처럼 우연히 옳은 신념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것이 앎에 도달했다 말하기는 어렵다. 그가 안다고 주장하려면 그 명제가 옳다고 믿을만한 증거를 가져야만 한다. 따라서 SP다 라고 말하기 위해서 P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SP라는 증언이 정당화되기 위해선 P라고 믿는 조건을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 가령 P를 뒷받침하는 조건은 범주(예컨대 말은 범주에 따라 진술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말은 아래 열 가지 범주 중 하나에 속한다. 실체, 분량, 성질, 관계, 장소, 시간, 상태, 소유, 능동, 수동) 속에서 말 되어지며 범주에 따른 내용이 진리조건과 일치해야 할 것이다. 이를 정식화하면 SP를 안다면, SP를 믿는 일은 정당화된다.

논의된 바를 정리하면 형소법 1572항에 사실을 말한다 할 때 그 사실이란 아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SP를 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며, 조건이 만족되었을 때 비로소 앎이 성립하게 되고, 증인의 이 판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실 즉 증언이 된다는 것으로 얘기되었다. 따라서 형소법에 따른 증인의 자격(146(증인의자격) 법원은 법률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누구든지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다.)에 부합하더라도 앎을 구성할 수 없는 자의 말은 증언을 구성할 수 없기에 증거가 될 수 없다. 앞서 서문 () 에서 제시한 증언의 정당화 조건에 대해서 알아보았으며 증언은 의 지위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 차원에서 성립되었다 하더라도 판결에 충분조건은 아니다. 왜냐하면 증언 자체가 지니는 증명력에는 한계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계 지우는 근거가 무엇인지 말해져야만 한다.

 

증명력의 한계

 

- 우연적 참의 문제

SP에 대해 아는 것의 세 가지 조건은 옳고 믿으며 믿는 일이 정당화된 때이다. 이러한 전통적 표준분석은 20c까지 앎에 대한 완벽한 분석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금세기 들어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경우에도 그가 P를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60년대 제시된 일명 게티어문제이며, 그는 전통적 지식 개념에 결정적 반론을 제시한다.

 

사례 1

 

강철씨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자신의 딸로부터 딸이 새차를 구입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강철씨의 딸은 이제까지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한 딸이었으므로 물론 강철씨는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런데 오후에 강철씨는 보험외판원처럼 보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가족 중의 누군가가 새차를 구입했냐고 물었고, 딸이 새차를 구입했다고 믿고 있는 강철씨는 물론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여기서 실상은 한 번도 거짓말 안 하던 딸이 오늘만큼은 거짓말을 한 것인데, 공교롭게도 오늘 강철씨는 전혀 모르게 강철씨의 부인이 새차를 구입했다고 가정하자. (물론 보험외판원은 강철씨 부인 때문에 전화를 했을 것이다.) (게티어 문제는 정당한 참된 믿음은 지식인가?”(번역 양동훈) *Edmund L. Gettier, "is justified ture belief knowledge?"주머니 속 동전사례로 나타나나, 번역의 한계로 철학적 회의주의와 배제의 원리”(임일환)에서 게티어 문제를 재구성한 사례를 인용함, 강조는 내가)

 

이 사례의 초점은 강철씨 입장에서 가족 중 누군가 새 차를 구입했다라는 명제가 과연 지식인가 하는지 여부이다. 앞서 지식은 세 가지 조건에 의해 성립된다 했다. 강철씨 입장에서는 딸로부터 딸이 새 차를 구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믿는다.(신념조건) 그리고 딸이 평소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비추어 보아 그 믿음은 정당화 된다.(정당화조건) 그리고 강철씨의 부인이 차를 샀다.(진리조건) 이를 정식화 하면 다음과 같다.

 

SP가족 중의 누군가 새차를 구입했다.” - 명제

P는 옳다 새차를 구입했다 ..... (~, 부인이)” -진리조건

SP를 믿는다. “딸에게 새차를 구입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그걸 믿는다.” -신념조건

SP를 믿는 것은 정당화 된다. “딸이 그동안 거짓말을 안했다는 점에서 그 믿음은 정당화 된다.”-정당화조건

 

핵심은 강철씨가 가족 중 누군가 새 차를 샀다.” 라는 명제를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조건에 있다는 것이다. 강철씨가 구성한 믿음은 앎의 조건에 부합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 믿음의 진리가 참된 것은 진리치가 참된 것인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우연적으로 부인이 새 차를 샀기 때문이다. 즉 우연에 의해 참된 사실이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강철씨가 가족 중 하나가 차를 구입했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사례 2

 

시계공장 사장실에 근무하고 있는 미스 김의 책상에는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탁상 시계가 놓여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하던 사장님이 미스 김에게 지금 시간을 물었고, 탁상시계를 쳐다본 미스 김이 정각 아홉 시라고 답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이 경우 진짜 상황은 어제 저녁 9시 정각에 시계는 고장이 나서 멈췄고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 아홉 시 정각에 사장님이 시간을 물어보았다고 가정하자.

 

이 사례를 전통적 지식분석에 의해 정식화 하면 다음과 같다.

 

SP지금 시간은 정각 아홉 시 이다.” - 명제

P는 옳다 아홉 시가 맞다.” -진리조건

SP를 믿는다. “미스김은 시계를 본 후 정각 아홉 시 라고 대답했다.” - 신념조건

SP를 믿는 것은 정당화 된다. “과거에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시계이다.” -정당화조건

 

위 사례를 정식화하여 정리하면 앎의 조건은 타당하지만 현재 시간이 아홉 시라는 미스김의 대답은 우연하에 의해 이뤄진 참된 믿음이다. 따라서 앞선 사례 1의 자동차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미스김이 그때의 정확한 시간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장님이 9시가 되기 30분 전, 후에 똑같은 질문을 했다 하더라도 미스김은 똑같이 9시라고 대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스김의 대답은 지식이 아니며, 운에 의해 성립된 참된 믿음에 불과한 것이다.

두 사례를 살펴보았다. 핵심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인식주체가 믿는 것이 합리적이고 정당하다 할지라도 사례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나중에 거짓인 믿음으로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식주체의 앎인 P와 우연에 의해 참이 된 Q는 결코 인식주체와 결코 무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P를 안다는 것에서 Q가 도출되지 않으므로 PQ는 필연적인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인식구조의 문제가 있다 말할 수 있는데 앎은 정당하지만 늘 거짓인 믿음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식은 오류가능성 늘 수반하기에 정당성 있는 거짓 믿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계를 설정하기 위해선 모르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앞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정당하게 안다 할지라도 인식 P와 사실 Q는 필연적으로 같지 않다는 점에서 앎에서 성립된 증언에서 절대적 참이 아님을 유도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앎의 세 가지 가능조건에 의해 말이 증명력을 지닌 증언을 정당화된다 하더라도 인식구조 아래에 성립되는 오류가능성에 근거하여 증언 자체가 판결에 절대적일 수 없는 한에서 증명력을 가질 수 있다.

 

 

-시간적 차원의 문제

앞서서 인식의 정당성과 그 한계에 대해 다루어졌다면 이번엔 증언의 뼈대를 이루는 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다 할 때 그것은 말이란 표현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은 근본적으로 인식주체의 기억에 근거한다. 따라서 말을 파악할 때 그 근거인 기억의 성격을 설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틀림없다.

여기서 말하는 기억은 두 가지 범주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다. 하나는 철수가 진달래와 철쭉이라는 각각의 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우 구분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바로 기억이다. 이때의 기억은 과거의 경험적 근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기억이 작동한다. 즉 과거에 진달래와 철쭉이라는 꽃을 보고 특징을 구분하게 되었고 그 특징에 따라 각각이 다른 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경험적 기억이 현재의 판단에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기억은 이러한 종류가 아니다.

여기서 기억의 개념은 철수가 어제 산책을 하다가 진달래와 철쭉을 보았고 그 기억에 바탕하여 나는 어제 진달래와 철쭉을 보았다라고 믿는다면 그 믿음을 정당하게 만들어주는 종류의 기억이다. 즉 어제 산책을 하면서 가진 기억이다. 따라서 기억은 이러한 종류의 의미로 쓰겠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기억이 주로 증언함에 있어 사용되는 기억일 것이다.

말의 근거가 기억인 까닭은 생성과 소멸의 질서에 있는 인간은 시간의 규정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시간적으로 조건 지워졌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과거로 돌아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기억에 근거해서 과거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간조건에 규정되어 있다면, 그리고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이 기억이라면 발생하는 문제 상황은 다음과 같다. “기억이 과거를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는가?” 이 문제가 이번 장의 주요 내용이다.

참으로 묘한 사실은 아무리 견고한 경험, 기억, 심지어 사물이라 할지라도 시간 속에 담그면 점차 흐려지거나 물렁물렁해지다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즉 모든 것이 처음 그 자체를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시간에 종속당한 것의 특성이라는 점이다. 여기서는 산책하다 본 철수가 본 진달래와 철쭉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그리고 알 수 있듯 여기서 주요 쟁점의 대상이 되었고 문제 되는 시간은 객관적 시간이 아니라, 주관적 차원의 시간이다. 따라서 증언의 타당성과 한계를 탐구하는 한, 시간에 대한 의식 즉 <시간의식>(Edmund Husserl<시간의식> 한길그레이트북스- 이종훈 옮김)을 배제할 수 없다.

후설은 인간의 시간의식을 규정하면서 의식적 차원의 대상으로 다루고자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먼저 몇 가지 일반적인 주의사항들을 미리 말해두어야만 하겠다. 우리의 의도는 시간의식의 현상학적 분석이다. 따라서 모든 현상학적 분석에서와 같이, 이 경우 객관적 시간(objektive Zeit)에 관련된 모든 가정, 확정, 확신은 제외되어야만 한다.p55

후설은 객관적 시간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배제한다. 그러므로 시간에 따라 흐르는 세계를 함께 배제하고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사유의 대상은 의식 흐름에 속하는 내적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밝힌다.

한 자루의 분필을 주목해보자. 그리고 눈을 감고, 또 떠보자. 이때 우리는 두 가지 지각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일한 분필을 두 번 본다고 말한다. 이 경우 우리는 시간적으로 분리된 [지각의] 내용들을 갖게 되고, 또한 현상학적으로 시간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음’(zeitliches Aus-einader),즉 분리됨을 간취한다. 그러나 대상에는 어떠한 분리도 없으며, 대상은 동일하다. 말하자면 대상 속에는 지속(Dauer), 현상 속에는 변화(Wechsel)가 있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존함(Koexistenz)이 객관적으로 확정할 수 있는 경우에도 우리는 시간적 계기관계를 주관적으로 감각할 수 있다. p62

 

비유에 의하면 세계에 그렇게 존재하는 대상으로서 분필이 있지만 눈을 감았다 뜰 경우 우리의 지각에서 대상이 보임-보이지 않음-보임으로 우리에게 파악된다. 이때 우리는 보임과 안보임 그리고 보임이라는 선후관계를 파악하는데, 이 파악은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의식이라는 점에서 대상 그 자체가 소유한 시간성이 아닌(, 객관적시간), 우리의 내적 시간성을 파악할 수 있음을 밝힌다. 후설은 이처럼 객관적시간과 현상학적시간 내적시간을 구분하고 있다.

내적시간을 출발점으로 시간선상에 따라 울려 퍼지는 멜로디를 통하여 전체적인 시간의식을 파악해보자.

하나의 멜로디 혹은 이 멜로디의 서로 관련된 부분들에 대해 예를 들어보자. 즉 우리는 그 멜로디를 듣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 멜로디를 지각한다. 왜냐하면 듣는 것 은 실로 지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음이 울려퍼지고 있는 가운데 두 번째 음, 그런 다음 세 번째 음 등이 들려온다. 하지만 두 번째 음이 울려퍼질 때 나는 그 음을 듣고 있지만, 그러나 최초의 음은 더 이상 듣고 있지 않다 등으로 말해야만 하지 않을까? 따라서 나는 멜로디를 듣는 것이 아니라, 현전하는 개별적 음을 듣고 있는 것이다. 멜로디의 경과된 부분들이 나에게 대상적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기억(Erinnerung), 즉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말하는 경향에서의 기억에 힘입는다. 그리고 내가 그때그때의 음을 듣는 경우, 이 모든 것이 존재하리라고 전제하지 않는 것도 나는 앞서 바라보는 기대(Erwartung)에 힘입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해명에 만족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위에서 논의된 모든 것은 개별적 음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각각의 음은 그 자체로 시간적 연장을 가지며, 이것이 울려퍼지는 경우 나는 이것을 지금으로서 듣는다. 그러나 그 음이 계속 울려퍼지는 경우 항상 새로운 지금을 획득하며, 그때그때마다 선행한 지금은 과거 속으로 변화되어간다. 따라서 나는 그때그때마다 그 음의 현실적 국면만을 들을 뿐이며, 지속되고 있는 음 전체의 객관성은 작용연속체(Aktkontinuum) 속에서 구성된다. 이 작용연속체의 한 부분이 기억이며, 가장 작은 점과 같은 부분이 지각이고, 그 이상의 [더 넒은] 부분이 기대이다.p62

 

멜로디란 개별음들의 집합이다. 그리고 멜로디의 음이란 동시에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니라. 순서에 따라 개별음들이 나열된다는 점에서 각각의 음은 그 자체로 시간선상에서 하나의 위치를 갖는다. 따라서 멜로디를 구성하는 개별 음표 하나하나가 시간적 연장을 보유한 셈이다.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면 개별음들이 시간에 따라 지속적으로 흐른다. 그리고 이를 듣는 인식주체의 경우 매 순간순간 지금으로 듣는 음을 지각하지만 지금듣는 음은 계속해서 새로운 지금으로 재구성되면서 앞서 다가오는 지금이 지나간 지금으로 변한다. 그리고 소리는 작용연속체(인식주체)의 부분으로 기억이고 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점과 같은 부분을 지각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순수하게 멜로디 소리만을 듣는다면 소리가 쥐어주는 두 가지 특성을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하나는 개별 음의 단순집합인 멜로디가 나타내는 통일성이다.

 

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하고 중단하며, 음의 지속통일 전체, 즉 음이 울려퍼지고 이것을 중단하는 과정 전체의 통일은 그 음이 울려퍼지는 것이 끝남에 따라 항상 보다 먼 과거 속으로 밀려난다. 이러한 뒤로 밀려남 속에서 나는 그 음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고, 그 음을 과거지향 속에서 갖고 있다.P87

 

예컨대 스피커에 들리는 멜로디와 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소음 또한 멜로디와 마찬가지로 개별 음을 구성하며 시간적 연장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멜로디가 끝났다. 그럼에도 외부 소음은 음으로써 지속하고 있다. 이때 우리는 방금 음악을 들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별음들의 통일성을 간취하고 그것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지나간 시간 연장체가 무엇인지 여전히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음이 무엇인지 알기에 음에 대한 과거지향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그 음들이 우리 의식 속에서 변양(Modification)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음의 지속간격 전체나 그것이 확장되고 있는 그 음은 소위 죽은 것으로서, 즉 더 이상 자신을 생생하게 산출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서 현존하며, ‘지금이라는 산출시점에 의해서는 활성화되지 않는 형성물로서 현존한다. 그러나 이 형성물은 끊임없이 변양되고, 공허함 속으로 가라 앉아버린다.p88

 

과거지향에 의해 우리의 인식에 들어온 시간객체들은 지금시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 버린것이다. 따라서 지나간 시간객체는 더 이상 바로 지금 눈앞에 지각되어 현전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 생생하게 있지 않고, 기억 속에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개별음A는 지금 울리고 있는 개별음B와 비교하면 생생함이 다소 변했다 할 수 있다. 개별음B는 개별음A에 비해 생생함이 강하다. 하지만 개별음A는 지금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며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여전히 인식주체의 지금 의식에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개별음C가 울린다면 개별음B아직의식에 붙들려 있고 개별음A아직 아직에붙들려 있는 형식으로 점점 공허속으로 사라지는 쪽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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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의 시간론을 도식화하면 <그림>과 같다. 그림에서 A - E는 각각에 해당하는 지금의 지점들이다. E - A`는 한 멜로디 즉 연속체로서 과거를 지닌 시점이며 E - P`는 개별음들이 단계 지워지는 것이다. A - A`는 아래 즉 공허로 가라앉는다. P - P`A - A`에 비해 늦게 시작하고 덜 가라앉는 것으로 보면 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취하고자 하는 것은 증언을 위한 말이란 자신이 과거에 경험한 기억 대한 말이다. 그러나 과거로 지나가버린 인식은 지금 시점에서 다시 생각한다 하더라도 과거의 지각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변양되어 나타난다는 사실과 공허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므로 기억은 과거를 투명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증언의 증명력은 시간선상에 따라 감소한다는 것이다.

 

나가는 말

 

형소법 1572항에서 나타나는 사실의 개념이 무엇인지로 시작하여 주관적 차원의 말이 어떻게 정당한 증언으로서 성립 가능한지 그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 수단으로 전통적표준분석이라는 방법을 사용했고, 우리가 안다고 말하기 위해선 진리, 신념, 정당화 조건에 근거할 때만 안다가 성립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형소법 1572항에서 의미하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선 위의 조건에 부합해야 말이 효력 있는 증언으로 정당화되는 것으로 구성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우연적 참인 믿음이 가능하다는 것과 기억이 과거를 투명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우리의 인식구조의 한계로 증언이 절대적으로 증명력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배심원이고 지금 갑돌이라는 피고가 살인 사건의 범인인가 아닌가를 두고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 사례는 갑돌이가 사건의 범인인지 아닌지를 밝혀줄 만한 그 어떤 객관적 물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유일한 사건의 목격자인 철수는 사건시각 사건현장 근처에서 갑돌이를 보았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 이 경우 배심원인 당신이 알고자 하는 것은 갑돌이가 범인이라는 확실한 지식도 아니고 오류불가능한 지식도 아니다. 단지 상식에 비추어 갑돌이가 범인인가 아닌가 하는 일상적인 지식을 얻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상황에서도 당신이 범인이 갑돌이인지 알기위해선 적어도 철수가 사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럴싸한 말을 하는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만약 배심원인 당신이 철수의 증언을 신뢰할 수 없다면 당신은 갑돌이가 범인이라는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사례에서 배심원은 갑돌이가 진짜 살인을 했는지 안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문제는 철수의 증언이 범행 여부의 유일한 증거이다. 그런데 배심원은 철수가 그럴싸한 말을 하는지 아니면 사실을 말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갑돌이가 범인이란 사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본문에서 논의된 증언의 한계가 설정된다면 갑돌이와 증언자 철수 사례에서 철수의 증언은 단지 개연적 증거일 뿐이다. 갑돌이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철수가 과거의 사건을 투명하게 말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판결이 철수의 증언이란 개연적 증거에 의해 즉, 확실성이 부재한 상태에서 달성될 수 있다면 갑돌이가 살인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다. 당신이 재판에서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는 것은 부조리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 생각한다면 판결이 증언하나 만으로 구성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참고도서

 

Platon,Theaitetos, 정암학당, 정준영옮김

Edmund Husserl,시간의식, 한길그레이트북스, 이종훈옮김

칸트,순수이성비판2, 아카넷, 백종헌옮김

한상기,지식의 조건, 서광사

임일환 철학적 회의주의와 배제의 원리

Edmund L. Gettier, "is justified ture belief knowledge?"( 번역 양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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